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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살지 말자(마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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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작성일09-09-05 12:02 조회1,8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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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楚靈王好細腰 國中多餓人」초나라의 영 임금이 여자의 가는 허리를 좋아하니 나라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더라는 뜻입니다. 조금 가장 된 표현 같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좋아하는 일이 사회에 유행을 만든 모양이고 유행을 따라 허리를 가늘게 하다 보니 영양실조가 되어 병들어 죽게 된 미인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우리말에 덩달아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체의식이 없이 남의 흉내만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하늘이 주는 자기 독립된 인격을 멸시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자기 철학, 자기 사상을 확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도 자기의 말과 행동에 대한 자기 자신의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남이 이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책임 있는 행동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남도 그런 일을 했으니 나도 해서 안 될 것이 뭐냐는 것도 좋은 핑계거리는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요즈음 클린턴 성추문 사건을 통하여 미국인들의 통념(通念)에 고개를 갸웃거려 봅니다. 닉슨 대통령의 전화 도청 사건에는 칼날같이 싸늘하게 탄핵을 했던 그들이 아닙니까?
그것은 정객들 사이에 너무나 비일비재한 사건이며 어느 나라에나 허다한 사례인데 그들은 오직 원칙에 기준을 두고 냉정하게 처리했다고 봅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특히 이성관계의 윤리성을 그렇게도 강조하던 미국이 어떻게 클린턴에게는 저처럼 관대할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미국인들에 대한 윤리적 비난이 있을 것이요, 교육적으로 좋은 전철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결론짓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허와 실에 철저한 계산가들이요, 남의 눈치나 비위에 맞추어 덩달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원칙은 그들에게 유리한 것이 원칙이요, 어떤 설득이나 체면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인들 사이의 의식에 차이 인 것 같습니다.
나는 서양인들의 계산적이고 냉혹하리 만큼 철저한 주체의식을 미화하려거나 클린턴 사건을 당연하게 받아 드리는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남들이 모두 그러하니까 나도 괜찮다는 막연한 생각이나 행동은 지양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선과 의를 지향하는데 그래 주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꼭 마이너스(-) 성향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합니다. 不正(부정)에 대해서 “모두가 부수입을 올리는데 못 먹는 것도 장애이다” 는 말들을 보통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간다고 해서 반드시 바른길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그리로 가는 자가 많다」고 경계하지 않았습니까? 힘에 아부하고, 돈에 휘청거리고, 명예에 굴복하다가 끝나는 나의 일생이라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모두가 흘러 내려가는 탁류 속에서 혼자만이라도 고개를 들고 “그러기를 잘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성공 자입니다. 너무 냉혹한 자기 계산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물론 功利(공리)를 쫓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도매금으로 끼어 들어가는 덩달아 사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유행만 쫓지 말고 부정을 합리화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 존재의 가치 기준을 바로 깨달아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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