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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창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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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작성일09-09-12 11:05 조회1,4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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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이 말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던 요셉이 애굽 바로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한 질문입니다.  그 당시 요셉의 실정은 어떠했습니까? 주인 부인의 음탕한 유혹을 뿌리친 강직 때문에 오히려 겁간하려 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고 너무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도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기가 막혀 밥이 제대로 넘어 가겠습니까?  자기 코도 석자나 빠져 있는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언제 풀려날지? 가망 없는 징역살이를 생각할 때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 재판을 받으면서도 전혀 여주인에게 불리한 변명 한마디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자기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리라고 믿고 자기 할 일을 찾아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39:22에 보면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볼 때 요셉은 절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신 바람나게 어려운 죄수들을 돌보아 주고 봉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 그들의 얼굴빛을 보고 근심 빛이 있는 것을 발견한 요셉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 대화가 연장되어 그들의 꿈을 해석 해 주게 되었고 그 연유로 나중에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게까지 되어 노예요셉, 죄수요셉이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운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당연한 보상이요, 사역 원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나만 죽겠다. 바쁘다. 못살겠다. 힘들다 자기 타령만 하지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남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갖습니까?
내가 요셉처럼 괴롭고 분하고 억울한 처지였다면 남의 호소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근심 띤 얼굴빛까지 신경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요즈음은 좀 어렵다고 너무 인간관계가 차가워진 것 같아 오한끼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언제부터 남의 일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속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까?  남의 자식이 잘못되어도, 누가 불행해졌건, 죽었건 그것은 남의 일이라고 관심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자기 처지는 생각지도 않고 근심 빛을 띤 다른 죄수의 얼굴빛을 보고 마음 아파하던 요셉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위를 돌아보며 마음 아파하는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비벌리 스미스(Beverly smith)는 특수한 소녀환자였습니다.  머리를 부딪쳐도 , 손을 불에 데어도 울지 않습니다. 오직 배가 고프고 화가 났을 때만 웁니다.  중추신경에 이상이 있어 아픔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픔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혜택인지 모릅니다.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아픔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마음에 아픔. 양심의 아픔이 없는 사람은 정신 중추신경이 마비된 심각한 환자입니다.  거의 세상 사람이 이러한 환자가 되어버린 이때에 유리 크리스챤들의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요셉처럼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훈훈한 가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오늘도 주위를 둘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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