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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막는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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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작성일 26-01-10 23:35 조회 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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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5:1-5
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어렵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도비야는 무력 시위를 하며 성벽 공사를 방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큰 문제는 내부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고리대금이 횡횡하여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고 멀쩡한 가정이 깨지고 노예로 팔려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1절에 백성들이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짓었다고 합니다.

여인들의 곡소리가 언급된 것은 오늘 본문의 문제가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임을 나타냅니다.

2절에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다자녀를 둔 가정들이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면 이는 심각한 경제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열악한 복지 상황에다가 흉년까지 겹쳤다고 합니다.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어려운 경제에 흉년까지 겹쳤지만 페르시아 왕이 거두는 세금은 변함없이 백성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같은 동포지만 고리대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땅을 뺏긴 사람들은 속절없이 노예 신세가 되어야 했습니다.

특히 딸 중에서 강제로 종된 자가 있다는 부분에서 돈 많은 자가 돈에 팔린 어린 여성의 성인권을 짓밟았다는 극악하고 비인간적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땅이 남의 것이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원어의 표현을 통해 구약에서 땅의 의미는 존재 자체를 뜻합니다.

땅은 생명이요 자유이며 땅이 없다는 것은 죽음이요 노예라는 것입니다.

빚을 대신 갚아줌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아주는 것을 '구속, 대속, 또는 속량' 이라고 합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자신의 목숨으로 치루시고 우리가 빼앗겼던 하나님과의 연합을 우리에게 되찾아주심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즉 구원은 구속과 속량, 대속과 속죄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치뤄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 사건이 바로 구원입니다.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느헤미야가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고리대금으로 인한 땅의 불법적인 매매와 그로인한 노예가 발생되는 반인권적인 행태야말로 이스라엘의 대적인 산발랏과 도비야보다 더 강력한 적이었습니다.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느헤미야는 크게 분노하였으나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는 '자기 자신에게 조언하다' 라는 원어의 표현대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침착을 유지한다라는 말입니다.

성질대로 한다면 페르시아 왕이 임명한 총독으로서 고리대부업자들을 당장에라도 응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리대부업에 앞장 선 사람들이 귀족들과 민장들이었습니다.

함부로 다루었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기득권의 이익을 취약층에게 돌리는 작업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공납의 폐해로 인해 고통 받던 백성들을 위해 광해군이 대동법을 시행했으나 기득권 사대부들의 반발로 인해 100년 후인 숙종때서야 겨우 실시되었고 그마저도 누더기법이 되어 소득분배의 효과는 미미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민장들을 처벌하는대신 자발적으로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 이자 받기를 멈추라고 요구하였습니다.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총독으로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협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라고하며 자신의 권력 대신 하나님의 보응하심을 내세웠습니다.

이스라엘 고관들은 페르시아 총독으로서 느헤미야의 법적 권능에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양심의 도전을 받았기에 기꺼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고리대업을 중지하고 빼앗은 땅들을 돌려주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는 목적은 단지 자주국방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의 종교와 문화와 함께 그들의 물질만능과 비인간화를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부적으로 탐욕과 이기심에 썩어있다면 성벽을 재건한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벽을 쌓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쌓는 성벽은 더 높은 건물과 더 높은 담장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쌓을 성벽은 세상과의 구별함입니다.

그것을 '거룩함'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를 바 없다면 우리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국 동포들에게 거두었던 이자는 백분의 일, 월 1 프로, 연 12프로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연 20프로가 법으로 정한 최고이자인 것과 비교한다면 당시 이스라엘 고리대금업자들은 최악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악하게 보신 것은 이자율이 아니라 이들의 탐욕입니다.

탐욕은 언제나 우리의 성벽의 틈바구니를 넘보고 넘어뜨리려고 애를 씁니다.

탐욕이 우리의 성벽을 넘어 들어온다면 우리는 탐욕에 빠질 것이며 이는 성벽 밖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려면, 구별되려면 우리는 탐욕과 싸워야 합니다.

탐욕과 싸우라고해서 자신의 모든 가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라는 말은 이단 사이비 교주들의 단골멘트입니다.

돈이 일만악의 뿌리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탐욕이 일만악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이 정당한 노동의 댓가이며, 교회와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남은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노동의 댓가를 우습게 여깁니다.

도박이나 다를 바 없는 주식, 코인, 부동산 등의 자본소득에 목을 매고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합니다.

옛날처럼 우직하게 일만 하다가는 벼락거지가 된다고 합니다.

주식, 코인, 부동산에 투자해서 벼락부자가 되야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절제와 노동, 그리고 나눔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물질관입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에게도 한탕주의 물질관이 성벽을 뚫고 위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지키듯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지킵시다.

돈이 예수님이 되고 하나님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에 탐욕의 틈을 주지 맙시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나누시기 바랍니다.

돈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시간도 이와 같습니다.

몇 천억을 벌었어도 하나님께서 건강 거두시면 무슨 소용입니까?

소소한 직업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그 마음으로 나누며 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의 보험에 여러분의 미래를 맡기지마시고 하나님의 천국 보험에 맡기십시오.

아무리 미약해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감당하는데 신경을 집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직도 쓰실만 한가보다 여기며 하루 하루 주어진 인생을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고 나누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까지도 영원히 여러분을 보장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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