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같은 사랑 > 주일오전예배

본문 바로가기


불 같은 사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6-08-23 06:09

본문

아가서 8:1-7
1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주일예배 설교본문으로 시편이나 잠언은 그래도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아가서는 굉장히 드뭅니다.

아가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기엔 자격이 없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아가서가 가치는 문학적 신학적 가치 특히 영적인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막대합니다.

그런데도 아가서가 설교본문으로 그렇게 인기있지 않는 이유는 낯설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솔로몬왕이 시골 촌구석 여인에게 구구절절히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가서의 대부분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경은 구원을 받기위해서는 이렇게 살어라 라는 조항들을 담은 법조문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아가서는 주구장창 사랑만 노래하니 이게 무슨 성경인가 읽으면서도 아리송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오늘날 기준으로도 당혹스러우리만치 사랑의 표현이 직설적입니다.

아가서를 쉽게 이해하려면 말하는 이, 화자를 구분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있고, 술람미 여인이 있고, 동네 여인들과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말하는 이가 누구인가를 알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읽은 1-3절은 술람미 여인의 대사입니다.

1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적응이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신분이 비슷해야할텐데 이건 왕과 시골 촌구석 여인이라는 너무나 대조적인 신분의 차이로 인해 술람미 여인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이 곤혹스럽습니다.

모범적이고 잘생긴 남자배우가 구설수 있는 여자배우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수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자기가 데리고 살 것도 아닌데 축복 받아야할 두 사람이 비난의 표적이 되버렸고 특히 선망의 대상이었던 남자배우는 문제의 여자배우 만큼이나 평판이 나빠졌습니다.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합니다.

나 같이 흠 많은 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다니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다니 이것은 공평과 정의를 깨뜨리는 대역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위해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죄값을 대신 치뤄주셨으니 바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입니다.

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예수님께서 나를 그저 측은히 여기셔서 선심쓰듯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의 집에서 함께 마시고 팔을 베고 안아주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목숨까지 바치신 것입니다.

자격없는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신분의 격차로 인한 수 많은 불만을 잠재우시기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기꺼히 죽임 당하셨습니다.

4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이 부분은 솔로몬 왕의 대사입니다.

거친 들과 사과나무 밭은 고난 가득한 우리 인생과 자동적으로 매치됩니다.

인생의 수고로 인해 잠들었던 우리를 깨워주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우리와 예수님의 만남은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하루하루 버텨내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며 우리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셨음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가장 잘 꾸미고 잘 나가는 때가 아니라 가장 추하고 부끄럽고 곤궁하며 지쳐 쓰러졌을 때 예수님을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는 모습이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깨어나기를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 부분은 술람미 여인의 대사입니다.

도장은 법적인 도구입니다.

무를 수 없고 영원히 지속되는 효력을 뜻합니다.

나를 위해 거친 들 사과나무 밭까지 온 솔로몬 왕에게 도장부터 찍으라니 황당한 소리입니다.

자격없는 나를 사랑해주니 고맙기는한데 앞으로 콩까지가 벗겨질 것을 대비해서 미리 도장부터 찍어달라는 말입니다.

이래서 자격없이 사랑받으면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개는 이뻐해주면 꼬리를 흔들고 좋아합니다.

어떤 개는 간식을 줬는데도 쓰다듬으려하면 간식을 뺏는 줄 알고 으르렁댑니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잘 받습니다.

사랑해주면 사랑 받으면 될텐데 즐겨보지도 못하고 헤어질 것을 미리 걱정합니다.

꿈에 그리던 행복이 찾아오자마자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불행해질 것부터 염려하기 시작합니다. 

고난의 인생길에서 우리가 받은 충격은 나도 모르게 나를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충격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마저 거부하고 왜곡해 버리고 맙니다.

자격없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텐데 도저히 믿기지 않아 두 가지 형태로 거부합니다.

먼저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격없이 사랑받았으니 이제는 스스로 자격을 갖추어야겠다는 인간적인 생각에 상식 밖의 과도한 종교활동으로 자격을 갖추려고 합니다.

금식기도, 성경통독, 각종 전도와 구제를 무슨 자격증 따듯 의무적으로 해내면서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그러한 종교활동은 내가 구원받았음을 증명하는 과정일 뿐이며 그 과정에서 나에게 방해가 되거나 도움이 안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응징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두 번째, 자격없이 구원받았으니 아예 다 포기하자는 구원파의 행태입니다.

구원 받은 인식만 있으면 모든 죄가 다 해결된다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얄팍한 논리로 자신의 구원을 합리화합니다.

구원파의 이 잘못된 구원의 확신 때문에 구원파에 있다가 빠져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구원파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잘못된 구원의 확신이 머리에 남아있어 정통교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 모두 공통점은 '불안' 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안합니다.

그래서 마귀사단은 그 불안을 이용해서 천국에 가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고 구원받으려면 우리 성경공부해야 한다고 불안을 조성합니다.

이단들은 우리의 불안함을 이용하여 협박하고 마치 그들이 한 번에 해결해 줄 것처럼 속입니다.

열심히 봉사한다고 집 팔아 바친다고 불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경공부 한다고 불안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지만 스스로 자격없음을 알기에 이 불안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함을 너무 확대하거나 너무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불안함이 없는 삶이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성경으로 불안을 해결하려 하지만 성경은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처럼 명쾌한 답을 우리에게 주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줍니다.
   
사랑에 있어서 애매모호함은 고통입니다.

확신을 줘야 진짜 사랑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그 사람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불안하니까 더 절실한 것이 사랑입니다.

이미 다 알면 이 전 만큼 사랑하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 조차 인생의 말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는 끝없이 천국가는 날까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불안하다가 때로는 확신에 찼다가 왔다갔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놓치 않고 거북이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읽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에 조금씩 조금씩 빠져드는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09건 1 페이지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열람중 한순복 16 08-23
608 한순복 693 06-14
607 한순복 1231 04-05
606 한순복 1653 03-15
605 한순복 1625 03-08
604 한순복 1737 02-15
603 한순복 1655 02-08
602 한순복 1953 01-10
601 한순복 2246 01-04
600 한순복 1940 12-31
599 한순복 2332 12-21
598 한순복 2190 12-14
597 한순복 2236 12-07
596 한순복 2437 11-16
595 한순복 2703 11-09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